권선혜 기자 | 10.12.30 | Hit 790

[마중물] 말 없는 말


말 없는 말

은행원이었던 나의 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당신이 주장하실 말씀이 있어도
결코 그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내게 어려운 일이 있어도 속으로
걱정은 하시면서 너무 말이 없어
어떤 때는 원망스러움이 앞설 때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느닷없이
민중서관에서 발행한 32권짜리
'한국문학전집'을 사오셨다. 그런데
그 책을 방 안에 두기만 했을 뿐
"이 책 읽어라" 하고 말씀하신 적은 없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책을 사다주시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문학의 길로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군에 입대해서 보충대에 있을 때였다.
누가 이등병인 나를 면회 왔다고 해서
폭설이 내린 넓은 연병장을 숨 가쁘게 달려갔다.
위병소 앞에 조그마한 한 사내가
낡은 외투 깃을 올리고 서 있었다.
아버지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도 아버지는 "배고프나?"
단 한마디뿐이었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신 대신
편지를 자주 보내주셨다.
신문마다 난 신춘문예 모집 사고(社告)를
일일이 오려 군대로 보내주셨다.
아버지의 그런 정성 덕분인지,
나는 군복무 중 문단에 등단할 수 있었다.
제대복을 입고 청량리역에 도착한 내게
아버지가 말없이 내민 것은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는 내용이
타자된 노란 전보지 한 장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말없이 말씀을
하심으로써 침묵의 힘을 내게 가르쳐주셨다.
아버지가 그토록 말씀이 없으셨던 것은
천성도 그러셨겠지만, 은행원으로서
개미처럼 숫자에 매달려 조심조심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버지는 나이 마흔에 당신 스스로
은행을 그만두고 이런저런 자영업을 하다가
다 실패함으로써, 일찍이 실패의
소중한 의미 또한 내게 가르쳐주셨다.
인생에 성공이란 없다는 것을.
되풀이되는 실패의 과정이 곧 인생이며,
그 과정을 인내하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것을.

나는 지금, 시는 실패와 결핍과
침묵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는다.
아버지처럼 말이 없는 데서
말이 이루어지고, 보이지 않는 데서
보이는 그 무엇이 시라는 것을 믿는다.

아버지는 이제 청력을 잃었으며,
한쪽 눈이 실명된 지도 오래되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말씀이 없으시고
매일 기도하고 일기만 쓰신다.
돌아가시고 나서 그 일기를 보고,
내가 또 얼마나 울 것인가.

『아버지의 추억』
(정호승 외 지음 | 따뜻한손)

출처 : 마중물(www.mjm.co.kr)
사진작품 : 주동호 작가 / 글 : 따뜻한손 제공

권선혜 book@j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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